가몽

2013/11/05

러브레터 – 이해하지 못한 진실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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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츠키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히로코와 그의 새 애인(이 사람은 죽은 히로코 애인의 친구며 히로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애인이 죽자 당연히 히로코에 접근하면서, 죽은 옛 애인에 대한 마음의 정리를 집요하게 요구한다.)은 마침내 이츠키를 만나러 간다. 그러나 이들이 이츠키 집에 도착했을 때, 이츠키는 병원에 있었고, 히로코는 편지를 남기고 되돌아 간다. 돌아가는 길에 히로코는 택시 운전사로부터 비밀의 실마리를 듣는다. 택시 운전사는 좀 전에 자기가 이 마을로 태우고 온 손님이 히로코와 매우 닮았다는 말이다.

-장면이 바뀌어 히로코는 거리에 서 있다. 이츠키는 아무 생각 없이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지나간다. 히로코는 문득 자신을 지나치는 이츠키를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과 너무나도 흡사한 이츠키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이츠키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자전거를 멈추고 돌아보지만, 때마침 거리를 쏟아져 지나가는 인파 때문에 히로코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녀는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자전거를 타고 자리를 떠난다.

히로코는 죽은 애인 이츠키 대신 살아 있는 한 여성 이츠키를 알게 되고, 이츠키는 히로코를 계기로 학창 시절 자기와 이름이 똑같은 한 남학생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게 된다. 이츠키는 히로코에게 그 남학생에 대한 기억의 단편들을 편지로 보내주게 되는데…

이츠코와 히로코는 정반대의 내부적 속성을 지닌 인물이지만 역설적으로 겉모습은 똑 같다. 히로코는 현재라는 시점에서 사랑을 잃은 여성이다. 반면 이츠키는 망각의 늪 속에 추억을 가진 과거라는 시점이 중요한 여성이다-현재와 과거의 대칭.

히로코는 도시적이고 차분한, 현대적이고 세련된 여성이며, 이츠키는 인적이 드문 시골에 사는 약간은 덤벙거리는 소박한 생활을 하는 여성이다-성격적 대칭. 그러나 이러한 대칭은 존재하지 않는 한 남자를 통해 하나의 축으로 연결된다.

히로코는 사랑의 흔적을 찾아 편지를 보내고, 이츠키는 추억의 실마리를 찾아 회상을 한다. 그리고 편지 교환을 통해, 그 둘은 아주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이츠키는 추억을 회상하는 동안 조금씩, 자기와 동성동명의 남학생이 자신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그것에 대한 증명서라도 발급해 주듯, 남학생이 그린 이츠키의 스케치를 보여 준다. 반대로 히로코는 자기가 사랑한 남자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성은 자신이 아니라 이츠키였음을 느낀다. 그리고는 비참한 결론에 도달한다. 자신이 이츠키를 닮아서 그가 자신을 사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영화 러브 레터는 평범하고, 담담한 영상 속에서도 암암리에 관객을 긴장시키는 파격적인 상징을 담고 있다. 헐리웃 영화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기법이다. 이중 구조의 심연이 그것이다. 이츠키와 히로코의 대칭 구조는 전술한 부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츠키는 사실 사랑의 전단계 어쩌면 사랑이라고 말할 수조차도 없는 그런 상태에 있었던 한 소년과 한 소녀의 추억을 상징한다. 이츠키는 그 추억의 의미를 나중에야 깨닫게 될 뿐, 히로코의 편지를 받기 전까지는 그 의미를 전혀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기억이 추억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도 히로코의 편지 왕래를 통해, 그리고 회상을 통해 과거에 알던 한 소년을 이해하게 된 이후이다. 그리고 그 애매한 기억은 추억으로 다시 사랑으로 판명되고 그것은 진실이었다.

반면, 히로코는 성인의 사랑, 모든 것이 뚜렷한 사랑을 표현하는 상징이다. 그러나 분명하고 확실해 보였던 그 사랑은 본질로 다가갈수록 커다란 착각이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의 애인은 과거의 사랑 때문에 현실의 자기를 사랑한다고 한 것이 아닌가라는…

영화 ‘러브 레터’는 이 기묘한 반전을 통해 성인들의 사랑의 확신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잔인할 정도로 찬찬히 세세하게 보여준다. 아직도 내 귀에는 우리 기성세대, 성인들의 오만한 단정들-사랑, 행복, 우정, 평화 등등에 대한-이 얼마나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것들인가를 담담히 설명하는 작가의 음성이 들려 오는 듯하다. 오히려 세상에 대해 감정에 대해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시절의 사랑이나 행복이 진실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가볍게 미소로 자신을 닫아 버리는 작가를 보는 듯하다.


이츠키는 감기에 걸렸지만 병원에 가지 않아서, 마침내 위험한 고비를 맞게 된다. 그리고 이 고비를 넘기면서 스토리는 또 한번의 반전을 한다. 여기에 작가는 새로운 실마리를 슬쩍 떨어뜨려 준다. 이츠키의 환경, 즉 편리하지도 않고, 위험하기까지 한 오래된 집, 그리고 이사 문제를 둘러싼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갈등. 이츠키의 어머니는 시아버지의 뜻을 결국 받아들이고 이사를 가지 않는다. 이츠키 집안에서는 현실적 편리가 패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아버지, 즉 이츠키의 할아버지는 왜 그 집에 집착하는 지를 설명해 준다. 바로 이츠키를 상징하는 나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츠키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가 된 나무이기도 하다. 이츠키라는 이름, 생명의 상징인 나무, 그리고 운명적인 연결… 이츠키는 자기와 동성동명인 동급생 때문에 당하는 갖가지 불유쾌한 사건들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이츠키 가족들의 스토리는 현대 사회-편리함, 인스턴트, 운명의 거부, 오만한 상식-들과는 반대되는 곳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츠키의 승리는 작가가 인생의 궁극적인 가치의 근원으로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엿보게 한다.


영화 ‘러브 레터’의 가치는 스토리 전개 방식에 더 빛난다. 이 영화는 현대에 대한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상징들을 두둑히 간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개의 소재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의 내용과 어투, 소소한 사건들, 그리고 죽은 자에 대한 산 자의 인사조차도 너무나 평범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눈이, 그 하얀 색 속에 모든 것을 묻어 두듯, 이 영화는 평범한 일상들을 깨끗하고 담담한 영상으로 채색하고, 모든 상징들은 눈 속에 묻힌 세계처럼 하얀 옷을 입고 웅크린다. 바로 침묵하는 자의 열렬한 웅변과도 같은 영화이다.


나는 이 시나리오의 원작가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여성인 것 같다. 사랑이라는 테마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그 방식이 도저히 남성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그 진실에의 접근은 얼음의 심장을 가진 의사가 환자의 환부를 도려내듯, 섬세하고 집요하다. 자신의 모순이나 허상을 섬뜩할 정도로 담담하게 묘사하는 작가. 너무나 뜨거워서 오히려 차가운, 그리고 그 차가움마저도 따뜻함으로 녹여버린 그 담담함… 그 달관의 아름다움. 영화의 전편에 흐르는 그 깨끗한 이미지는 아마도 이런 작가 자신의 표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헐리웃 영화는 볼 때만 흥분된다면, 러브 레터는 보고 난 후 더 가슴 가득한 무엇을 느끼게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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