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몽

2013/11/05

몽이의 우울

나는 어렸을 때부터 뭐든 잘 믿었다. 그래서 동화책에 나오는 구름 위의 천사들의 세계를 굳게 믿었다. 구름 위로 올라갈 수 있다면, 나는 천사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 내가 산타클로스를 만나 본 적이 없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충분히 착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산타클로스는 크리스 이브를 아주 바쁘게 보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깊은 산속에는 구미호들이 살고, 우주인들은 호시탐탐 지구를 노리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약간 나이가 먹어서는 나의 신뢰 리스트에 새로운 내용들이 추가되었다. 가령, 인간은 모두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런 잠재 능력의 5%도 채 사용하지 못한다-와 같은 종류들이다. 특히 뇌의 70% 이상이 사용되고 있지 않는데, 이들을 사용할 수 있다면 나와 같은 보통 사람도 천재와 같이 될 수 있다-와 같은 말에는 너무 쉽게 현혹되었다. 물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천국(혹은 극락)에 간다거나,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결국 행복하게 된다거나 하는 말들은 꿈에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신뢰 리스트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줄씩 줄어들고 있었다. 이런 변화가 성장의 결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쩐지 세상은 김빠진 콜라같은 것으로 변해간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산타클로스가 있다면, 천사들의 세계가 있다면, 우주인들이 있다면, 세상은 좀 더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흥미를 보이는 어른들은 극소수인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5%밖에 사용되지 않고 있는데, 사용량을 늘이면, 우리는 보다 뛰어난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은 주장에는 여전히 솔깃해 하는 어른들이 많은 것 같다. 특히, 학부모가 되면 더 그런 것 같다.

내가 대학에서 뇌에 관한 공부를 한 이유도 그런 주장들에 호감을 갖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생명체와 시스템에 관해서 오랫동안 공부한 이후 내가 내린 결론은 우울하게도 부정적이다. 현대의 생물학은 나를 매료시켰던, 뇌에 관한, 그리고 인간의 잠재능력에 관한 가설들을 단호하게 기각해 버렸다. 논지는 간단하다. 현대의 생물학은 경쟁과 진화를 생물학적 현상들의 중요한 원인으로 생각한다. 이 원리에 따르면, 치열한 생존 경쟁 안에 있는 인간이 달랑 5~30 % 정도의 능력만 발휘하면서 산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즉, 현재 자신의 모습이 내가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란 의미이다. 우리는 늘 생물학적(심리학적으로가 아니고)으로 우리가 낼 수 있는 최선의 능력을 다하고 산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영화 속에 나오는 초능력이나 혹은 사용되지 않는 70%의 뇌가 주는 특별한 능력 같은 것들은 애당초부터 없다고 봐야 한다. 그것이 논리적이다. 그리고 단 몇 달 안에 영어를 마스터 하는 능력도 우리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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